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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부산시청 국제의전실 단상에 세계적인 기후학자인 악셀 팀머만(Axel Timmermann) 박사가 섰다. 이날 그는 부산광역시로부터 ‘명예시민’으로 선정됐다. 외국에서 온 잠시 한국을 찾은 인사가 명예시민으로 위촉되는 일은 종종 있다. 하지만 팀머만 박사는 그런 사람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가 연구를 하는 곳이 부산이기 때문이다.
팀머만 박사는 2017년 부산대 석학교수이자 대지급금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초대 단장으로 부임해 해양·대기 순환, 기후변화 예측, 고기후 재구성 등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다. 네이처·사이언스를 포함한 주요 학술지에 240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하며, 기후물리연구단을 세계 기후과학 연구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가 외국인 과학자가 아니라 ‘부산 사람’으로 불려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셈이다.
한국이지론승인 지난달 부산대에서 만난 팀머만 단장은 “부산은 해변만 7개에 산과 바다, 도시가 다 있어 즐기고 휴식하기에 좋은 곳이면서도 생활과 연구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며 “연구와 일상을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사진 촬영과 하이킹, 사찰 탐방을 즐겨 하고 있다. 벽에는 한국의 자연 풍광을 빌라방공제 담은 사진들이 가득 있었다. 파도 부서지는 해운대부터, 고즈넉한 사찰의 전각, 낯설 만큼 이국적인 계곡의 모습까지, 한국 생활이 8년 차에 접어들며 그의 연구와 일상도 자연스럽게 부산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이 찍은 해무 낀 해운대./악 담보대출갈아타기 셀 팀머만


◇한국어 은행 앱과 몇 시간씩 씨름하며 정착
물론 정착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은행 업무나 온라인 서비스, 행정 절차가 모두 한국어로만 되어 있어 처음에는 작은 일도 버거웠다”며 “온라인 뱅킹 앱(app·응용프로그램) 하나 사용하는 데도 구글 번역기를 켜 접대비 놓고 씨름 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말했다.
학회 자료 제출이나 관공서 민원 처리 같은 기본적인 절차도 외국인 연구자에게는 높은 장벽이었다. 그는 “늘 혼자 하는 성격 탓에 더 힘들었다”며 “덕분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에서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IBS와 대학, 정부 부처를 잇는 복잡한 행정 체계 속에서 외국인 연구책임자가 새로 연구단을 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형 슈퍼컴퓨터를 도입할 때는 건물 안전 문제 때문에 설치 공간을 찾느라 수개월씩 지연됐다. 연구단 규모에 맞는 공간과 지원 체계를 갖추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는 “결국은 잘 정착했지만, 처음부터 외국인 연구책임자를 위한 행정·리더십 트레이닝 제도가 있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독일 헬름홀츠 학회처럼 시니어 교수가 합류할 때 1~2주간 문제를 직면하고, 소통하고, 협의하는 방법 등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비자·채용·주거·의료 관련 사항을 모두 모은 ‘풀 패키지’ 정착 지원을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연구시스템은 세계적…정부 정책 변화는 불안
그럼에도 그는 IBS 시스템의 장점을 높이 평가했다. 팀머만 단장은 “장기적이고 대규모로 기초과학 연구 지원이 보장된다는 점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장점”이라고 말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비교해도 IBS는 연구 주제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점에서 독창적이라고 했다.
다만 한계도 분명히 지적했다. 그는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는 책임자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정부의 관리가 따로 없어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IBS는 정부 관리를 받다 보니 정책 방향이 매번 바뀌면 불안한 점이 있다. 독립적인 구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올해도 8년 차 평가를 받았다”며 “기초과학은 긴 호흡이 필요한데, 이렇게 자주 평가가 반복되면 연구자들이 불안해진다”고 했다. 연구자들이 긴 안목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팀머만 단장 연구실의 야스퍼 와센버그(Jasper Wassenburg) 박사도 이날 “IBS에서 젊은 과학자를 육성하는 영사이언티스트펠로우(YSF) 예산을 지원받고 있긴 하지만,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과 제도가 변할 때마다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지오양 루안(Jiaoyang Ruan) 영사이언티스트펠로우(YSF), 야스퍼 와센버그(Jasper Wassen burg) YSF, 악셀 팀머만 단장./부산=홍아름 기자


◇‘외국인’ 아닌 ‘국제 연구자’로 수용해야
이민정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10년에 체류 자격을 취득한 외국인 연구자 중 66.5%는 5년 이내 한국을 떠났다. 5~10년 이내는 13.4%, 10년 이상은 19.6%에 불과하다. 2021년 기으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임시비자 소지자가 10년 이상 체류하는 비율이 65%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에 온 외국인 연구자는 대부분 단기간 체류에 그친다는 의미다.
한국 생활 10년을 바라보는 팀머만 단장은 외국인 연구자를 유치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꼈을까. 그는 망설임 없이 ‘호칭’을 꼽았다. 팀머만 박사는 “외국인(foreigner) 연구자가 아니라 국제 연구자(international researcher)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언제든 떠날 방문자로만 규정한다”며 “집에 누굴 초대해 놓고 ‘언제 나갈 거냐’고 묻는 것과 같이 무례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과학계의 구조적 과제도 짚었다. 젠더(gender, 사회적 성) 불평등이 그중 하나다. 팀머만 단장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과학 공동체의 성별 균형은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며 “젠더 불평등 상황은 한국 연구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팀머만 단장은 한국 과학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면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 동료 과학자들에게 IBS 성과를 소개하면 다들 놀란다”며 “국제적인 성공 사례YSF인 지오양 루안(Jiaoyang Ruan) 박사도 “전체적인 연구 환경은 정말 좋은데 해외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거 같아 아쉽다”고 했다.
팀머만 단장은 30~40년 전만 해도 전문적이고 사회와 무관해 보였던 연구가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안긴 청색 LED(발광다이오드)는 수십년 동안 천천히 축적된 발견이 나중에 산업과 일상을 혁신했고, 기후 과학도 소수 연구자의 방정식에서 출발해 국제 정책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에는 무엇보다 인내심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제 연구자가 긴 호흡으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한국 과학도 세계를 변화시키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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